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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8년간의 긴 여정, ‘이재용 재판’ 유감

[데스크 칼럼] 8년간의 긴 여정, ‘이재용 재판’ 유감

  • 기자명 김기범 기자
  • 입력 2023.11.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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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다 쏟아붓겠다” 이재용 다짐 바라보는 국민 정서 읽어야

S-저널 김기범 편집국장
S-저널 김기범 편집국장

우리나라 재벌들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존재도 없다. 

절대 부(富)를 손에 쥔 이들이니만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부는 권력, 명예와도 직결된다. 강자의 힘은 곧 만인의 존경과 추앙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된다.

더구나 지난했던 근현대사를 뒤로 하고 불과 수십년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적 특수성은 ‘신화’를 지닌 재벌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다. 

알고 보면 한국 재벌들만큼 기구한 팔자를 지닌 이들도 드물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뿐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매 정권마다 눈치도 살펴야 했다. ‘눈부신’ 국가경제 발전의 최일선에서 위정자들과 늘 궤를 함께해야 했기 때문이다. 민간 비즈니스 영역에서 사회 공익 선도를 강요받으면서도 종국엔 정권의 희생양이 되기 일쑤였다. 

합리와 이성보다는 몰상식과 부조리가 지배하던 고도의 ‘압축성장’ 시기, 각자 치부를 묻어버리고 오로지 성과를 내야 했던 한국식 자본주의 결과였다.

이에 비해 현대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 거물들 모습은 확실히 꿋꿋하다.

가치투자의 대명사인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 워렌 버핏은 최소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엔 주저하지 않았다. 본인의 기부 행태를 ‘합법적 탈세’로 치부하는 비판론자와 공화당에 냉소적으로 맞섰다. 지금은 선행의 천사로 인식되는 빌 게이츠는 돈만 밝히는 ‘실리콘 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로 불릴 때도 있었다.

신세대 아이콘인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이들의 기행(奇行)은 이미 엔터테이너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일례로 올 한해 머스크와 저커버그는 ‘현피’ 논란으로 넷상에서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일반인의 조소와 비아냥 소재가 되긴 했어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창의력의 대가(大家)들다웠다. 

한정된 자원으로 단시일 내에 경제발전을 일군 한국식 재벌과 서구 자본주의 총아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산업화를 이끈 역사의 주역들과 그 후손들이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있었다. 

그를 둘러싼 재판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라면 이재용 회장에게 아직도 무슨 재판이 남았나 싶을 것이다. 이미 이 회장이 죗값을 치르고 사면 복권되지 않았나 되물을 수도 있다. 지난 7년 동안 법원과 감방을 오갔던 이 회장 모습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대해 검찰은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이 회장을 2020년 9월 기소했다. 징역 2년 6개월 실형으로 법정 구속됐다가 지난해 여름 형기 만료 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2016년 ‘국정 농단’ 사건과는 별개 사안이다. 

이른바 ‘경영권 불법 승계’로 검찰이 17일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하기까지 지난 3년 2개월간 총 106차례 재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95차례 법정에 출석했다. 약 90%의 출석률이다.

그나마 11차례 불출석 사유는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 동행이나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면담 등이었다. 공익적 차원에서 수시로 국가적 대사에 동원되면서도 매달 2~3회씩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게 이 회장 현실이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에게 새로운 경영 혁신을 선보이길 원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한 대목일 수 있다.

일각에선 지난 2014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와병 이후 이 회장이 삼성을 맡고 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일갈이 나왔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선친이 이뤘던 ‘초격차’는 어디 갔냐는 회의론적 시각도 있다. 이 회장이 추구하는 ‘뉴 삼성’ 실체는 무엇이냔 일성도 들린다. 

라이벌인 애플과 TSMC를 따라잡을 비전이 아쉽다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끈 지난 10년 중 7년은 늘 ‘사법 리스크’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 7년 중 총 565일간 ‘감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무시해선 안된다. 형기 만료 후 5년간 취업제한 조치는 이 회장의 실질적 경영 활동에 족쇄가 됐다.

만약 내년 초 이 회장에 대해 또다시 법원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추가 재판 출석은 장기화 될 수 있다. 원활한 삼성 회장직 활동엔 여전히 제약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 와중에 올해 삼성전자는 매 분기마다 ‘어닝쇼크’에 직면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일찌감치 예견됐지만,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 3분기 기준 누적 적자가 어느덧 13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국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게,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애플에게 시장 점유율 1위를 넘겼다. 그러면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지켜져야 한다. 

장기적 전략과 글로벌 환경 대처를 위해서라도 이 회장 의사결정이 중요한 이유다.

애당초 2020년 6월 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사건’에 대해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도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하고 검찰에 권고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기소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린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고 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근 8년 동안 한국사회 구조도 그만큼 바뀌었다. 아니, 바뀌어 있어야만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한 시대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린 사법적 잣대는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가의 보도’처럼 케케묵은 경제 위기론을 들먹이며 이미 벌은 받을 만큼 받았다고 재벌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근시안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국내 재벌 지배구조나 문제점은 개선돼야 한다. 이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늘상 따라붙는 사법 리스크를 삼성 투명성 제고를 위한 계기와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 국정농단 사건 이후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등을 통해 ‘뉴 삼성’ 기치를 높이 들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조그만 발걸음이나마 내딛는 의미가 있다. 

요사이 재계나 금융권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얘기는 한결같다. 올해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불어닥쳤던 경기 침체는 내년 하반기 전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겨웠던 코로나19 팬데믹만큼이나 앞으로도 더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단 의미다. 그날그날 경제 동향을 일선에서 접하는 이로선 비슷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그 못지않게 재판에 쫓기어 자신의 조부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추도식 참여도 미뤄야 했던 이 회장 심경은 필시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법정 최후 진술에서 마지막 문장에 목이 메었다는 후문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저 ‘쇼맨십’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글로벌 삼성’ 수장을 바라보는 국민 심정도 이 회장 이상으로 복잡하지 않았을까. 

기업인으로서, 대한민국 재벌은 일개 사인(私人)이 아닌 사회 공익을 짊어지고 가는 공인(公人) 대접을 받은 지 오래다. 분명 자율에 의한 기부와 선행이 활성화된 서구 사회 재벌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아직도 이 회장은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문 경제사절단으로 이달엔 영국, 내달엔 네덜란드도 가야 한다. 

이러한 이 회장은 법정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면서 더욱 신중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최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을 잊은 댓가는 “기업가로서 지속해서 회사에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게끔 하는 것이다.

“책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붓겠다”는 이 회장 다짐에 경제 위기 탈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는 국민 정서도 위정자들은 읽어야 할 줄 믿는다.

여기에 주변 질시나 비난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가는 ‘쿨한’ 부자의 출현을 이 땅의 미래세대는 더욱 원하고 있을 터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내년 1월 26일, 사법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있길 바랄 뿐이다.

 

[S-저널 = 김기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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